8장. 충남 아산행

구건호는 양주로 돌아와 다시 방일가스에 열심히 다녔다.

매출이 발생하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수입과 지출은 엑셀에 <일일 수지 현황>이라는 표를 작성하여 사장에게 보고하였다. 지출 영수증은 꼭 챙겼다가 문방구에서 사온 전표에 따로 작성하고 전표 뒤에 풀로 영수증을 붙였다. LPG가스료 입금이 안 된 업체는 독촉 전화도 하였다. 그밖에 사장의 잔심부름도 하였다.

“이렇게 세월만 가는 건가?”

구건호는 지금의 처지가 먹고는 살지만 저축이 힘들어 나이만 자꾸 먹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초조감도 들었다.

“수요일이 되었는데 아산에 면접 본 회사는 연락도 없네.”

구건호는 수요일이 되자 문자메세라도 왔는가 하여 열심히 스마트폰을 보았다. 혹시 전화 소리를 못 들을까 걱정하여 벨소리 음성도 크게 키워 놓았다. 그러나 전화는커녕 문자 메시지도 없었다.

“튼 모양이다. 미련 갖지 말자.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데 나 같은 스펙과 경력 가지고 되겠어? 면접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 해야지.”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과 금요일이 지나자 구건호는 아산에 있는 회사는 체념하였다. 다시 워크넷과 벼룩신문을 훑어보았지만 눈에 확 띠는 회사가 없었다.

“벼룩 신문에 나오는 경리 모집은 여사원이나 뽑지 나 뽑겠나. 혹시 남자를 뽑으면 여기처럼 반쪽짜리 업무에 잡일과 겸하는 것들일 테지.”

구건호는 퇴근하면 희미한 조명 아래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이나 보던가 아니면 동네 피시방으로 갔다. 고등학교 동창들보다 한없이 밀리는 것 같아 우울했다.

“결혼한 조원철은 잘 살겠지? 카이스트 나와 판교 벤처기업 연구소에 나간다는 황병철도 결혼 한다며? 짜식, 페이스북에 결혼한다는 글 올렸던데, 나한테는 연락도 없네. 조원철이나 다른 동창들한테 연락하면 내 전화 알 것을.”

구건호는 이틀에 한번 꼴로 소주를 사다 마시니 주량만 늘었다.

“나는 촌구석에서 살 팔자인가 보다. 팔자가 이렇게 더러운데 뭐? 신왕재왕한 사주팔자라고? 개뿔! 신왕재왕은 무슨 얼어 죽을!”


구건호가 면접을 본 아산에 있는 회사는 면접을 본지가 보름이나 지나버렸다. 이제 언제 면접을 보았었든가 하고 기억 속에 사라지려고 할 무렵 아산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뜻밖이었다.

“구건호씨죠? 안녕하세요? 아산 와이에스테크 경리부장입니다.”

“아, 예. 구건호입니다.”

“연락 늦게 드려 미안합니다. 이번 경리사원 모집에 채용 확정되었습니다. 다음달 1일부터 출근 가능하시지요?”

구건호는 느닷없는 전화에 정신이 번쩍했다.

“아, 예, 예. 가능합니다.”

“다음달 1일이라고 해도 5일 정도 남았는데요. 어떻게 지금 계신 곳 정리 다하고 오실 수 있어요?”

“물론입니다. 가능합니다!”

“그럼 오실 때 준비서류를 불러드리지요. 메모 가능하시지요?”

구건호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메모지와 볼펜을 찾다가 휴대폰도 떨어트리고 컴퓨터 줄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였다.

“오실 때 준비서류는 주민등록등본 한통, 병역사항 기재된 주민등록 초본 한통, 최종학교 졸업증명서 한통, 정보이용 동의서 한통, 신원진술서 한통, 지금 다니는 회사 경력증명서 한통 이렇게 준비해 가지고 오세요. 정보이용 동의서와 신원진술서 양식은 이력서에 나와 있는 메일 주소로 보내드리지요.”

“아, 알겠습니다. 준비하여 가지고 가겠습니다!”

“1일 날 오실 때 아침 8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구건호는 너무도 황송하여 감사합니다를 두 번이나 복창했다.

“됐구나! 됐어!”

구건호는 손뼉을 쳤다. 기분이 하늘로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 연락하지? 지난주 수요일까지 연락한다고 해 놓고서.”

구건호는 다시 의자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뽑아놓은 사람이 사정이 생겨 못 오니까 나를 대타로 뽑은 거야. 그러면 그렇지. 나 같은 놈을 뽑겠어? 어쨌든 뽑는다고 했으니 내려가자.”

구건호는 수금하러 나갔다가 오는 길에 은현면 면사무소를 들렸다.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을 발급받았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는 인터넷에 들어가 뽑으면 되는데 경력증명서? 이런 건 방일가스에 없는데. 인터넷 보고 하나 만들지 뭐.”

구건호는 사무실에 돌아와 인터넷을 보고 경력증명서 하나를 만들었다.

“사장님 직인을 찍어야 하는데…. 세금계산서에 찍는 사용인감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그냥 팡팡 찍어?”

그래도 사장한테 말해야 되는 게 순서일 것 같았다.

“사장이 배관 수리하러 나갔으니 오면 잘 말씀드리자.”


오후 5시가 넘어 사장이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개자식들! 수리비용까지 깎으려고 하네. 고쳐주지 않고 그냥 돌아올걸. 에이!”

사장은 피곤한 모습으로 자기 의자에 풀썩하고 앉았다. 구건호는 사장에게 회사를 그만 둔다는 말을 할까 했지만 피곤한 사장의 얼굴을 보고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5시 반이네. 구주임 이제 들어가 봐요.”

구건호가 미적거리자 사장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왜? 네게 할 말이라도 있소?”

“저…. 이런 말씀 드리기가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부모님 계신 곳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왜? 아버님이 입원했다고 해서 그러슈?”

“부모님이 제가 오길 바라고, 또 부모님들도 연세가 많아서….”

“끙….”

사장의 얼굴이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누구를 또 앉히지. 구주임이 딱 좋았는데.”

“저,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는데 제 자리는 사모님이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건비 부담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집사람이? 그 사람이 컴퓨터를 아나?”

“요령만 알면 됩니다. 한두 달 하다보면 속도도 빨라질 것입니다.”

“인건비 절감이야 되겠지만…. 그 여편네 회사 나오면 자꾸 나하고 싸우려고 하는 통에 그게 문제야.”

“하하. 사장님 좋으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하여튼 생각 좀 해 보겠네.”

“그럼 제가 이달 말까지 근무하고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빨리?”

“부모님 재촉이 심해서요.”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에이.”

“그리고 제가 내려가면 혹시 필요할지 몰라 여기 회사 근무한 경력증명서 하나 만들겠습니다.”

“경력증명서? 나 그런 것 만들어 본적 없는데?”

“양식은 제가 만들어서 타이핑 했습니다. 사장님 도장만 찍어주시면 됩니다. 세금계산서에 찍는 사용 인감 찍어도 됩니다.”

“그래? 그럼 그건 알아서 하슈.”

“감사합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퇴근하슈.”

구건호는 공장을 나오면서 뒤돌아보았다.

“내 추억이 어린 공장이다.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니 성공하면 꼭 인사를 와야겠다.”

구건호는 어스름 무렵 차를 몰고 원룸이 있는 광적면 면사무소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원룸 주인에게 방을 빼야겠다고 전화를 했다.


구건호는 방일가스 업무를 새로 모집한 경리에게 인계를 했다. 새로 온 경리는 40대 아줌마였다. 사장은 인건비 부담 때문에 자기 부인을 경리로 앉힐까 하다가 부담이 되었는지 벼룩신문 광고를 내라고 하였었다.

벼룩신문 광고를 내자 경리 지원자가 11명이나 되었다. 사장은 면접 절차도 없이 그냥 회사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뽑았다. 사장 부인은 더욱 도끼눈을 하고 사장과 자주 다투었다.

“여성을 뽑았으니 사모님께서 더욱 씩씩거리겠는데.”

구건호는 슬며시 웃음이 났다.


구건호는 아산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 모든 짐을 정리했다. 가전제품이야 원래 원룸 주인 것이므로 이불과 옷, 책들만 챙겼다.

“포천공장에서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올 때 불필요한 짐을 잘 버렸지. 이번은 단출하네.”

그래도 짐은 아반떼 뒷 트렁크를 가득 채웠고 그것도 모자라 뒷좌석도 가득 채웠다.“

구건호가 모는 아반떼 승용차는 털털거리며 양주 고읍동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탔다.

“잘 있거라. 양주시야.”

구건호는 멀리 있는 양주시의 아파트들을 돌아보았다. 콧마루가 괜히 시큰거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포천시 갈림길이 나왔다.

“포천시, 너도 잘 있거라.”

구건호는 이곳 생활을 가늠해 보았다. 포천에서 공돌이 생활 1년, 양주에서 공돌이 6개월, 경리 6개월, 모두 2년을 이곳에서 청춘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새로운 감회가 일어났다.

“화성시에서 공돌이 생활한 것을 보태면 그동안 4년이나 공장 생활했네. 남은 건 털털거리는 300만원도 못되는 낡은 아반떼 뿐이니 씨팔, 더럽게 한심하네.”

구건호의 아반떼가 경부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차량이 많아졌다.

“앞에 가는 차 모두 고급차네. BMW, 벤츠, 랜드로버, 제네시스, 그랜저, K7, 빌어먹을! 내 차 소리가 제일 요란하네.”

구건호는 이 길을 다시 밟을 줄 몰랐다. 면접 발표 일을 하도 넘겨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런 행운이 오다니 실감이 안 났다.

“행운? 그래봤자 쫄다구고 월급 180정도겠지. 4년 동안 돈 한 푼 못 모으고 화성으로 포천으로 양주로, 이제는 32살이 되어 아산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니 나는 보헤미안임이 틀림없어.”

구건호는 지루한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왔다.


“Is this the l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Caught in a landslide. No escape from reality."

(이것이 현실일까요? 아니면 정말 환상일까요?

흙더미에 갇혀 현실에서 도망 칠 수 없어요.)


구건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흥얼거림이 계속되었다.


“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y and see.

I'm just a poorboy. I need no sympathy.

Because I'm,

Easy come, Easy go, A little high, little low,

Any way the wind blows.

It does'nt really matter to me, to me."

(너의 눈을 떠 보아라.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나는 가난한 소년일 뿐이에요. 동정은 필요 없어요.

왜냐면 나는

쉽게 오고, 쉽게 가고, 약간 높고, 약간 낮게 사니까요.

바람은 언제나 불었지, 나와는 정말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와는.)


구건호는 끝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구건호는 안성휴게소에 들려 화장실서 눈을 닦았다. 생수를 한 병 사 마시니 기운이 다시 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시간에 아산 둔포에서 원룸을 찾으면 바로 입주가 어려울 수도 있으니 천안시 두정동으로 가자.”

구건호는 근무지가 될 와이에스테크 공장에서 멀지 않은 천안시 두정동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는 번화가이므로 고시텔도 있으니 바로 입주가 가능했다. 두정동은 전에 화성에서 플라스틱 공장 사출공으로 있을 때 한번 와본 동네이기도 하였다.


구건호는 두정동에서 쉽게 고시텔을 찾았다.

“고시텔과 찜질방은 나의 영원한 고향. 보헤미안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구건호는 흥얼거리며 고시텔로 올라가 관리실 문을 두드렸다.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한 달간 사용할 방 있습니까?”

“있긴 있는데 인터넷은 내일 연결됩니다.”

“괜찮습니다. 얼마지요?”

“26만원!”

구건호가 계산하려고 카드를 꺼내자 고시텔 주인은 눈을 크게 뜨며 현금으로 달라고 하였다.

“카드 계산하려면 28만원 주셔야 합니다. 부가세가 붙거든요.”

구건호도 현금이 없었다.

“ATM기에서 현금 뽑아오지요.”

구건호는 가까운 곳에 있는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찾아 고시텔 한 달 방값을 지불했다. 짐을 옮기고 고시텔 침대에 누었다.

“이건 완전히 감옥 같군. 뭐가 이렇게 좁아. 화장실은 움직이기도 힘들겠네. 양주에 있는 원룸은 여기 비하면 궁궐이지. 어쨌든 여기서 한 달만 비벼보자.”


구건호는 입사서류가 든 대봉투를 들고 와이에스 테크 공장으로 출근했다. 종업원이 80명이라고 했으니 그동안 구건호가 다녔던 공장 규모로는 제일 컸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왔네.”

“이봐요! 어디 가요?”

경비 아저씨가 쫓아와 불렀다.

“2층 경리부에 갑니다.”

“말을 해야지, 말을. 저 위 2층으로 가세요.”

구건호가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2층 사무실은 경리팀, 총무팀, 영업팀, 물류팀 등이 있었다. 말이 팀이지 책상 수로 보아서는 팀에 있는 직원은 한 두 명인 듯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연락받고 왔습니다.”

“아, 구건호씨! 이리와 앉으세요. 제가 경리부장입니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이 내준 간이 의자에 앉았다. 가지고 온 서류를 제출했다. 경리부장이 서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조금 있으면 사장님 나오세요. 먼저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내가 각 직원들 소개해 드리지요.”

누가 들어오자 건너편 책상에 앉아있는 직원들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사장이 온 모양이었다. 경리부장은 책상위에 있는 서류를 집어 들고 일어섰다.

“따라오세요.”

구건호는 경리부장을 따라 사장실로 갔다. 사장실로 가는 도중 구건호가 경리부장을 자세히 보니 배가 좀 불러있는 것 같았다. 임신 중인 모양이었다. 경리부장이 사장실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새로 경리부에 들어올 신입사원입니다.”

경리부장이 사장에게 구건호를 인사시켰다. 사장은 역시 미남이었다. 사장은 테이블 위에 있는 경제신문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 그래? 이리와 앉아요.”

구건호가 조심스럽게 테이블의 맨 가장자리에 앉았다.


사장은 경리부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김 부장은 차 좀 가져오지.”

경리부장은 구건호가 가져온 입사서류를 사장 앞에 펼쳐 놓고 바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경리부장이 나가고 사장실엔 사장과 구건호 뿐이었다.

“집은 어디요?”

“현재 숙소는 천안 두정동에 있습니다. 곧 둔포로 옮길 예정입니다.”

“부모님은?”

“인천에 계십니다.”

“흠….”

경리부장이 녹차 3잔을 타가지고 왔다. 사장이 녹차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사장은 구건호의 입사서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공장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사실 우리 회사 규모로 보면 경리직원이 두 명씩은 필요치 않습니다. 여기 있는 경리 김 부장이 현재 출산을 앞두고 있어 보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뽑았습니다. 대우도 뭐 높지 않지만 열심히 일하면 급여는 차차 올려 줍니다.”

“아, 예.”

구건호가 허리를 굽히며 말을 받았다.

“김 부장! 아래 충 품질팀 새로 들어온 직원 급여를 우리가 얼마 책정했지요?”

“180입니다.”

“초봉은 180부터 시작합니다. 사실 면접 볼 때 이력서를 대충 보았는데 경력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사장은 구건호의 이름을 모르는지 책상위에 있는 구건호의 이력서를 뽑아들었다. 이력서 상단에 있는 이름을 보고 다시 말했다.

“구건호씨는 원래 뽑지 않았습니다. 채용 확정된 사람은 사료회사에서 10년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원래 있든 회사로 다시 가게 되어 구건호씨를 뽑았습니다. 구건호씨는 공장 경력도 있고 남자이기 때문에 나중에 필요하면 이 공장의 총무나 물류, 영업 등의 부서로 배치할 수도 있어 구건호씨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여기 공장은 분위기도 좋아 오래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 부장도 우리 회사에 입사한지가 한 15년 됐지요? 아마.”

사장은 경리부장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업무적인 것은 김 부장한테 잘 이야기 듣고 일하면 됩니다. 일만 잘하면 나중에 과장, 부장 승진할 수 있으니 열심히 일 하세요. 얼굴 보니 잘 하게 생겼는데?”

사장은 구건호를 쳐다보고 웃었다. 구건호는 황송하여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경리부장이 2층 사무실 직원들을 소개했다.

“총무과장 황선홍 씨입니다.”

총무과장은 구건호보다 나이가 서너 살 위로 보였다.

“경리부 새로 들어온 직원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부탁은 내가 해야지. 돈 만지는 부서가 최고 아닌가요?”

총무과장은 어째 비비 꼬는 듯한 인물인 것 같았다. 물류팀장과 영업부장도 소개 받았다. 물류팀장과 영업부장은 모두 50대들이었다. 이들은 전화 받느라고 정신이 없어 구건호에게 특별한 관심도 갖지 않았다.

“물류팀은 사원 2명이 더 있고, 영업과장도 있는데 모두 외근 나갔나 봐요. 나중에 인사하도록 하지요.”

경리부장이 다시 자기 책상 있는 곳으로 구건호를 데리고 왔다. 총무과장이 쪼르르 쫓아왔다.

“입사 구비서류는 날 주셔야지요.”

경리부장이 서류를 총무과장에게 주었다. 총무과장이 구건호를 보고 말했다.

“근로계약서 용지는 이따가 드릴 테니 일 보고 나한테 와요.”

“알겠습니다.”


경리부장은 자기 책상 옆자리에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여기 책상이 비었으니 앞으로 여기 앉아서 근무하시면 됩니다. 컴퓨터가 새건 아니지만 성능은 괜찮아요. 내가 쓰고 있는 회계프로그램을 연결시켜 드릴 테니까 사용하시면 되요.”

“여기 회사의 회계프로그램은 무엇을 쓰나요? 더존 것 쓰나요?”

“예, 더존 것 맞습니다.”

더존(Douzone)은 더존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회계프로그램을 말한다. 구건호는 드디어 회계프로그램을 다루게 되었다.

“사장님 말씀대로 내가 석 달 후면 출산 휴가를 해야 하니 열심히 업무 파악해 두세요.”

“저는 잘 모르니 부장님께서 잘 가르쳐 주십시오. 앞으로 큰 누님처럼 생각하겠습니다.”

“다 똑같지 뭐. 아까 이력서를 보니 내가 구건호씨 보다 10살 많네요. 호호.”

구건호가 계산해보니 경리부장은 나이가 42살이었다. 42살에 임신했으니 아주 늦게 결혼한 모양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부장님은 경험도 많으시고 경리 업무에 빠삭하시겠지만 저는 걱정이 많습니다. 먼저 있던 회사에서 간편 장부만 사용했지 정식 회계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분개는 할 줄 아시잖아요? 그냥 분개하시면서 입력하시면 되요. 세무신고 같은 건 내가 나와서 할 테니 우선 입출금 입력하시고 전표 출력하시면 되요.”

구건호는 정말 걱정되었다. 복잡한 회계의 분개방식도 헤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리부장도 구건호가 미덥지 못한지 잠시 걱정하는 눈치였다.


“이쪽 일 다 끝났어요?”

총무과장이 와서 경리부장에게 말했다.

“아니요. 조금만 더 이야기하지요.”

“나, 노동청에 가야되는데 빨리 말씀 나누고 구건호씨 나한테 보내요. 근로계약서도 쓰고 현장에 내려가 반장, 조장들한테도 인사도 해야 하니까.”

“한 10분이면 되요.”

경리부장이 이렇게 말했지만 총무과장은 안색이 안 좋아 보였다. 총무과장이 궁시렁 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경리부장이 낮은 소리로 구건호에게 말했다.

“총무과장 성격이 좀 까칠하니까 조심해요. 총무과장이 여기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을 나왔는데 어디 고위층 빽을 써서 우리 회사에 들어온 사람이에요.”

경리부장은 몇 가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구건호는 경리부장이 말하는 것을 다이어리에 열심히 적었지만 아직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많았다.


구건호가 총무과장 앞으로 왔다.

“근로계약서요. 우선 이것부터 쓰시오.”

근로계약서는 전에 공장 생산직 공돌이로 근무할 때도 써본 경험이 있어 일사천리로 썼다. 총무과장이 구건호의 입사 지원서류를 보며 다시 말했다.

“사이버 대학을 나왔는데 여긴 정식 학위 인정하는 곳 맞습니까?”

“아, 예. 그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방대학 인문학과를 다니셨는데 여기 재적증명서도 시간 있을 때 가지고 오십시오. 그리고 전산회계 2급 자격증도 가지고 오시고요. 입사지원서류 뒤에 첨부해 놓아야 합니다.”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리부는 힘 있는 부서니 앞으로 총무 쪽 일은 잘 봐주도록 해요.”

뼈있는 말을 하면서 총무과장이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는 악수를 하며 웃었다.

“힘 있는 부서가 어디 있습니까? 다 똑같은 부서들이지요.”

“아니요. 4대 보험 일은 내가 한다고 해도 원천징수 신고 같은 일은 경리에서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 하하, 아직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현장에 갑시다. 가서 대충 인사나 하고 옵시다. 인사도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밥 먹을 때 저 친구 누구냐고 수군거리니까.”

구건호는 총무과장을 따라 현장에 내려갔다. 품질팀, 생산팀, 공무팀을 차례로 들려 중간 간부들과 반장들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모두 활짝 웃는 낮으로 구건호를 대했다. 생산팀 조장이라는 아줌마 한명이 총무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지난달 급여명세서가 조금 이상해요. 원천징수도 지지난달보다 더 많이 뗀 것 같고요.”

“아, 그거? 앞으로 경리부에 이렇게 유능하신 분이 들어 왔으니 잘 조정해 줄 거요.”

구건호는 총무과장이 말을 좀 묘하게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