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강남 유명 역술인 박도사

“팔자라는 것이 있는 걸까?”

고모가 말했던 철학관 이름을 생각해 보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양주시로 접어들고 덕정동이라는 곳을 왔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샀다.

“젠장 멀기도 하네. 아직도 많이 남았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큰 언덕을 넘어 한참 달리다가 꼬불꼬불한 지방 도로를 달렸다.

“네비가 있어 좋긴 좋다, 1.5키로 남았네.”

“목적지 부근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네비게이션의 마지막 음성이 들렸다. 찾아온 공장은 논밭 사이에 있는 공장이었다. 허름한 건물의 중급 정도의 공장이었다. 아줌마가 나오더니 과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여기 찾기 힘들죠?”

아줌마는 인상 좋은 웃음을 지었다. 구건호가 젊은 사람이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젊은 분이라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 할 것 같네요. 상무님이 곧 오실 겁니다. 면접은 상무님이 보십니다.”

현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게차 기사치고는 좀 건방진 인상을 하고 있었다.

“상무님, 저분이 면접 보러 왔데요.”

알고 보니 지게차 기사가 상무였다. 여기는 상무가 지게차 운전도 하는 모양이었다. 상무가 테이블에 앉으며 구건호에게 앉으라고 하였다.

“서류 좀 봅시다.”


상무가 구건호의 이력서를 유심히 보았다.

“사출은 해보신 경험이 있군요. 여기는 온스가 좀 큰 것입니다. 파쇄기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 예.”

“운전면허증은 2종이요? 1종이요?”

“1종 보통 갖고 있습니다.”

“여기는 가끔 1톤 트럭 운전도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스틱 운전 가능하세요?”

“스틱은…. 군대에서 해 보았는데…. 하루 이틀 연습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여긴 기숙사가 없어요. 하나 있긴 있는데 외국인들이 사용하고 시설이 나빠 지내기가 힘듭니다. 사출을 해 보았다니 같이 잘 해 봅시다. 현장 보고 결정해도 됩니다.”

상무는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누굴 불렀다.

“김 반장! 김 반장!”

건너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빨간 작업복을 입은 40대가 뛰어 나왔다.

“이 분 같이 일하게 될지 모르니 일단 현장 투어 시켜주세요.”

김 반장이란 사람이 구건호를 데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은 소리가 요란했다. 화공 약품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원래 이렇게 소리가 납니까?”

“아니요. 저쪽 한구석에 재생 파쇄기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이 많네요.”

“예, 15명이 있습니다.”

일하던 외국인들이 반장과 구건호를 힐긋 힐긋 돌아보았다. 외국인들은 젊은이가 많았고 드믄 드문 섞여있는 한국인 근로자들은 대개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여긴 주 5일 근무지요?”

“기본은 그렇지만 토요일은 격주로 근무할 때가 많습니다.”

“급여는 얼마나 주나요?”

“사무실에서 이야기 못 들었습니까? 경력에 따라 다르니 난 잘 모르겠습니다.”

김 반장이라는 사람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구건호는 김 반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곱게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화제를 돌렸다.

“기계가 온스가 큰 것이라는 소릴 들었는데 대부분 작은 거네요.”

“큰 것은 B동에 있습니다. 이쪽 기계 잡던 사람이 그만 두었으니 아마 들어오신다면 이걸 잡을 겁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경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어디서 근무했습니까?”

“화성과 포천에서 일 했습니다.”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니시는 군요.”

반장이 약간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로 한번 받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혹 근무하게 된다면 잘 보여야 될 것 같아서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은 크지 않고 종업원도 30명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였으나 일단은 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논밭이 있어 복잡한 도시보다는 좋았고 또 플라스틱 공장은 어딜 가나 그게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반장이 갈군다 해도 술 한 잔 먹고 형님 소리 한번 불러주면 될 사람으로 보였다. 공장 밖으로 나오면서 반장에게 물었다.

“기숙사는 없다고 하는데 방을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광적면 면사무소 있는데도 좋고 좀 번화한데 가려면 덕정동이나 덕계동으로 가야합니다.”

구건호는 현장 투어를 마치고 다시 상무 앞으로 왔다. 이번엔 상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보셨지요? 회사 규모는 작아도 분위기는 좋습니다. 이직률도 별로 없고요. 에…. 급여는 180만원 정도는 맞춰 드리지요. 점심 식사도 저쪽 가건물 안에서 아줌마 한분이 오셔서 준비해 드립니다.”

구건호는 180이란 소리를 듣고 얼른 머리를 굴려보았다.

“방값은 30 정도 들어갈 테고, 자동차 기름 값 20,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고 아침, 저녁을 해 먹는다면….

생존은 하겠지만 저축은 별로 못할 것 같았다.

“1년 이상 근무하면 일 하는 것 봐서 급여는 올려드립니다. 여긴 야간 일해서 300까지 가져가는 외국인도 있습니다.

“300!”


구건호는 공무원 포기하고 어차피 공돌이 생활하니 야간 일을 해서 300을 벌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저녁때 친구를 만나고 관혼상제도 빠져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년 이상 근무하셔서 조장급이 되면 유류비도 약간씩은 지원해 드립니다.”

“일은 언제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가만있자.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상무가 벽에 붙은 달력을 쳐다보았다.

“월요일부터 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쪽에 살지 않는다면 방은 잡아야 할 테니까. 아 참, 오늘 아침 출근하다보니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 빌라에 보증금 없는 원룸 임대하는 광고가 붙은걸 보았어요. 한번 가서 알아보세요.”

“고맙습니다.”

“월요일 오실 때는 주민등록 등본 한통하고 은행 통장 사본 가져 오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상무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공장을 나왔다. 면접 채용이 된 것이다. 내친김에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양주시 광적면…. 참 들어보지도 못한 동네를 오게 되었네.”

갑자기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햇살론 융자를 받은 캐피탈 금융회사 직원의 전화였다.

“융자 받으신 것 이자가 연체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입금 가능하시겠습니까?”

김이 팍 세었다.

“예, 바로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5일까지 입금 안하시고 연체되시면 신용에 영향이 갈수도 있습니다.”

캐피탈 회사 직원의 목소리는 저승사자 목소리 같았다.

“휴.”

그놈의 주식을 한 것이 한없이 후회가 되었다.


구건호는 캐피탈 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고 좋던 기분이 확 가버렸다. 연체이자 독촉 전화는 잊어버리지도 않고 잘도 전화를 했다.

“월급 180만원 받아서 이자까지 갚아나가면 정말 손에 쥐는 게 없을 것 같네. 외국인들처럼 야간 근무라도 해야지 별수 있겠나. 야간 수당은 시급에 1.5배를 주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참 인생 더럽게 꼬이는군.”

시청이나 구청 같은 큰 건물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창 원철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원철이의 연봉이 5,000이라지?”

구건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나도 가난한 우리 아버지의 인생길을 걷게 되는군. 빌어먹을!”

구건호는 털털거리는 소형차를 운전하며 광적면을 찾아가다가 갑자기 고모가 말했던 철학관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진여 철학관이라고 했어!”

철학관 이름을 기억해 내니 기분이 좋았다.

“사주팔자 같은 건 믿지 않지만 한번 가봐?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는지? 정말 공돌이 하다가 끝나게 되는지 한번 물어봐? 철학관 원장이 족집게 선생이라면 무슨 말씀을 해 주실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그놈들이 뭘 알겠어. 자기 인생 자기가 잘 알면 왜 철학관 하고 앉았겠어.”

구건호는 정말 사주팔자 보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 20대 초반에 종로 인사동에 놀러갔다가 어느 사주카페에서 본 점괘가 엉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도 맞지 않고 돈만 날려 그 바닥에서 노는 사람들은 전부 사기꾼으로 보였다.

“그래도 고모가 그렇게 떠드니 호기심은 가네.”


구건호가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엘 갔다. 생각보다는 상가와 음식점이 많은 동네였다. 시골이지만 병원과 약국도 있었고 은행과 큰 마트도 있었다. 주변에 새로 지은 빌라도 많아 원룸 임대 현수막이 많이 붙어 있었다. 어떤 집은 고시원처럼 정말 보증금이 없다는 집도 있었다.

“시간이 4시 반 밖에 안됐으니 집 구경이나 하고 가자!”

구건호는 먼저 무보증 원룸을 가보았으나 옵션이 없는 집이었다. 필요한 가전제품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달치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받고 있는 집이 옵션이 있었다. 신축 건물이라 깨끗해서 좋았다.

“캬, 노량진에 비하면 궁전이다. 궁전!”

노량진의 고시원은 여기보다도 월세가 많았지만 창문도 없고 좁고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짐을 옮길 것도 없으니 내일 당장 옮기자.”

구건호는 차를 돌려 현재 숙소가 있는 포천시 소홀읍으로 차를 몰았다. 스마트폰에서 랩이 흘러 나오게 틀어놓고 포천을 향했다. 박종석한테 전화가 왔다.

“형, 뭐해? 취업운동 안 해?”

“면접보고 가는 길이야.”

“아, 그래? 잘 됐네! 뭐 하는 데야?”

“사출공장이지 뭐. 내가 해보던 일이니까. 월요일부터 나오래.”

“어딘데?”

“양주시 경신리.”

“경신리? 거기가 어딘데?”

“양주시에 있지.”

“양주시? 남양주시 아니고?”

“아니야. 의정부 위에 있는 양주시야.”

“내일 그때 그 저수지 안 갈래? 월요일부터 출근이니 낚시 가도 되겠다.”

“내일 짐 옮겨.”

“하하, 형 짐이 뭐 있겠어? 옷가지 하고 노트북 밖에 없잖아. 짐은 모래 옮기고 내일 낚시 가자. 인터넷 보니 거기서 베스 40센티 짜리하고 메기 50센티짜리 잡았다는 사람도 있어.”

“낚시에 완전히 미쳤군.”

“먼저 낚시 하자고 바람 잡았던 사람이 누군데?”

“알았어. 가자. 가.”

“내일은 일요일도 아니니 낚시꾼도 없을 거야.”

“아침 10시까지 차 가지고 나 있는 곳으로 와.”

“알았어.”

구건호는 취업이 되었으니 내일 후배 종석이와 낚시나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낚시터에서 소주와 통닭을 먹을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입맛이 돋았다.


다음날 구건호는 박종석과 함께 포천에 있는 저수지를 찾았다.

“난 여기 저수지가 제일 좋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첫째로 사람이 없어서 좋아.”

“맞아. 찾는 사람도 없고 돈 받는 저수지 관리인도 없고. 형, 양주에서 공장에 다니면 쉬는 날 가끔 여기서 만나자.”

“여긴 멀어. 기름 값 아껴야지.”

“그럼 양주에서 좋은 낚시터 개발해 놓던지.”

“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도 제네시스 리무진이 와 있네.”

“우리 포인트 또 뺏겼네.”

“그때 그 사람들이야. 40대와 60대.”

사람 소리에 낚시하던 40대와 60대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저 사람들은 평일에 웬 젊은 놈들이 낚시를 하나 생각하겠지?”

“신경 쓸 것 없어. 저자들도 평일에 낚시하는걸 보니 부도난 인간일 가능성이 많아. 아니면 사기치고 도망 다니는 놈일 테지.”

“차는 좋은데. 새 차고.”

“사기 치는 놈들이 차는 좋은 것 탄다더라.”

“형 차 아반떼는 몇 년 식이지?”

“10년 된 차다. 왜?”

“고장 안나? 몇 키로나 뛰었지?”

“20만키로 뛴 차다. 아직도 튼튼해. 미주대륙 횡단 하고도 남는다.”

“뒷 범퍼 까진 것 수리 안 해?”

“시간이 없어 못해.”

“돈이 없어 못했겠지.”

“이 새끼가!”

“히히. 취소, 취소.”


소란스러운 소리에 낚시하던 40대가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인상이 안 좋다.”

“쉿, 들려! 작게 이야기 해.”

구건호가 40대와 60대가 낚시하는 곳으로 갔다.

“많이 잡으셨어요?”

60대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사람은 벙어리인가?”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건너편 밤나무 아래에서 가지고 온 낚싯대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힉! 오늘은 통닭이 아니고 김밥이네!”

“통닭은 네가 사오기로 하지 않았어?”

“난 형이 또 사오는 줄 알았지.”

“돈 아껴야지. 다음 달 월급 나올 때까지는 허리띠 졸라매야 해.”

“이크! 저기 팔뚝만한 고기가 뛰어 오른다. 오늘은 뭐 좀 될 것 같은데.”

“너한테 잡힐 고기는 없어. 나한테 잡힐 고기는 있어도.”

“웃기네.”

구건호는 정말 이날 베스 한 마리를 잡았다. 일자리도 확정되었고 오래간만에 고기도 잡아 기분이 좋았다. 잡은 고기를 보려고 박종석이 달려왔다.

“와, 크다. 커. 내가 방금 놓친 것 보다는 작지만 크다. 커.”

“놓친 고기는 다 크다더라.”

“아니야. 정말 컷어.”

“종석아, 김밥이나 먹자. 이 잡은 베스 너 안 가져갈 것 같으면 저쪽 사람들 줄까?”

“저쪽 사람? 없잖아? 지금.”

구건호가 쳐다보니 낚시하던 40대와 60대는 벌써 가고 없었다.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고시텔에서 짐을 빼어 차에 실었다.

“짐 빼고 보니 물건이 많네. 방에 있을 땐 몰랐는데.”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뺏는데 짐이 어떻게나 많은지 3번이나 주차장을 오르락 거리며 차에 실었다. 철 지난 옷들, 노트북, 담요, 책 등 짐이 꽤 되었다. 책은 일부 버리기도 했고 냉장고에 있는 소주 먹다 남은 것도 아깝지만 버렸다. 헉헉거리며 짐을 옮기고 있는데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건호니? 너 요새 교회 안다니지?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모가 짐 옮기느라 바빠 죽겠는데 교회 다니라고 오랫동안 설교를 했다.

“지금 이삿짐 옮기느라 바쁘니 다음에 통화하시지요.”

“어머, 어머. 이사한다고? 어디로 가는 거지? 얘, 너 좋은 대로 가는 모양이구나. 하느님은 우리의 삶을 예정하고 계신단다. 이사 가는 곳 위치 알려주면 내가 한번 가겠다. 교회는 근처에도 있지? 하나님 믿으면 다 축복을 내려주신다.”

전화를 빨리 끊었으면 좋겠는데 미주알고주알 미칠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을 하면 또 꼬투리 잡고 길어질 까봐 예, 예 대답만 하였다.

“내 소리 듣고 있지? 교회는 꼭 다녀라. 그리고 참, 그 때 내가 말한 강남 철학관은 가 보았니? 못 가봤다고?”

“그런 것 저 믿지 않습니다.”

고모는 30분은 되어서야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애초에 고모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니, 그런데 고모는 교회 집사라는 분이 왜 사주팔자는 보러 다니는 거야?”

구건호는 고모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이사를 다 하고 새 방에 들어 누었다. 힘은 들었지만 옮기고 나니 기분이 후련했다. 밖에 나가 자장면을 사먹고 다시 집에 와 들어 누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친구들이나 보러 부천엘 갈까? 아니, 인터넷이 되나 그것부터 해보자.”


이사한 집이 인터넷이 이미 깔려있어 그것 하나는 좋았다. 요즘은 원룸 세 놓을 때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은 물론 인터넷이 깔려 있어야 방이 잘 나간다.

“인터넷은 빨라 좋군. 가만있자. 고모가 말한 강남 철학관을 검색해 볼까? 진여 철학관이라고 했지?”

철학관도 광고 시대라 인터넷을 치니 철학관 위치와 전화번호가 쫙 떴다. 철학관이 무척 많았다.

“아니, 우리나라에 철학관이 이렇게 많은가? 이 많은 철학관들이 다 밥 먹고 사는지 모르겠네.”

진여 철학관은 있었다. 대표 전화번호도 나와 있었다.

“심심한데 통화나 한번 해보자.”

신호가 몇 번 간 후에 나이 든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진여 철학관입니다.”

“원장님 좀 부탁합니다.”

“제가 원장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내일 일요일인데 혹시 문 여시나요?”

“일요일은 상담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엔 내가 산엘 갑니다.”

“아, 등산을 가시는군요.”

“등산이 아니고. 산 기도를 갑니다.”

“산 기도요? 아 예, 그럼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구건호는 피식 웃었다.

“산 기도라고? 웃기네. 등산 가면서 산 기도래. 도사 흉내는 제대로 내는 사람이군. 어쨌든 나중이라도 쪽박난 내 인생 어떻게 푸나 들어나 보자.”


월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

상무가 김반장에게 작업 지시를 받으라고 하였다. 김반장이 구건호를 데리고 간곳은 사출 성형실이 아니고 플라스틱 드럼통 세척하는 곳이었다. 화공약품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우리 회사는 일단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일정기간은 이곳을 거쳐야 합니다.”

“여기는 세척반 아닙니까?”

“드럼통을 세척하기도 하고 분쇄도 합니다. 세척반, 분쇄반을 거친후 성형 기계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화가 났다. 플라스틱 사출 성형을 하러 온 것이지 난데없이 무슨 드럼통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반장이 싱글 싱글 웃으며 일하겠으면 하고 나가려면 나가라는 표정이었다. 구건호는 방까지 옮겼는데 난감하였다. 상무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저는 사출 성형을 하러 들어왔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장은 세척반과 분쇄반을 3개월씩 거쳐야 합니다. 나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개자식들!”

욕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세척반과 분쇄반은 냄새도 많이 나고 특히 분쇄반은 소음도 극심해 이직율이 많아 구건호 같은 사람을 땜빵으로 집어넣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척 같은 일은 일이 힘은 좀 들지만 단순 노동이었다. 월급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면 할 만할 것도 같았다.

“알겠습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척반에는 이미 50대의 선임자가 있어 일을 하고 있었다. 선임자가 구건호에게 고무장갑과 쑤세미를 지급해 주었다. 선임자는 무표정하고 말이 없었다.

“드럼통에 남아있는 화공약품 찌꺼기를 이곳에 쏟으십시오. 약품이 살갗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고 가려우니 반드시 토시를 끼고 작업하십시오. 특히 화공약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젠장!”

욕이 나왔다. 선임자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였다. 선임자는 플라스틱 통을 공기흡입구로 닦아내고 이상한 약품을 섞은 물을 분사식으로 넣고 다시 수증기로 닦는 공정을 진행 하였다. 마지막 작업이 물로 닦는 것인데 이 일을 구건호가 하였다. 드럼통 100개를 닦고 나니 하늘이 노랗고 허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좀 쉬었다 하면 안 됩니까?”

선임자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이까짓 일로 쉬냐고 하는 표정 같았다.

“쉬려면 쉬십시오. 보통 2시간 하고 허리를 펴는데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어지간하면 그대로 하시지요.”

선임자는 구건호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은데 쉬지 않고 일했다. 기운도 세었다. 오랫동안 노동으로 다져진 사람으로 보였다.

“하루 종일 이 일만 하니 머리가 다 어질어질 하네.”

구건호는 퇴근 후 원룸에 오자마자 바로 쓰러져 버렸다.

“9급 공무원이 되었어야 하는 건데….”

공무원 못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이 악물고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공부만할 것 같았다.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하고 놀기만 해서 이런 벌을 받는 모양이구나.”

구건호는 서글퍼졌다.

“이렇게 해서 골병도 들고 우울증도 생기는구나. 에잇! 술이나 마시자.”

구건호는 운동복 차림에 추리닝을 입고 편의점으로 갔다. 소주를 3병이나 사가지고 왔다.


구건호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드럼통 닦는 일만 했다. 팔과 목이 쑤셨고 허리는 더욱 아팠다. 파스를 사다 붙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공장을 옮겨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공돌이 인생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니냐 하는 자포자기 심정만 들었다.

“포천 공장이 월급이 밀려서 그렇지 일은 참 편했는데….”

포천 공장에선 퇴근 후면 피시방에 가서 가끔 게임도 하였다. 이곳 양주로 와서는 게임은커녕 피곤 때문에 소주마시고 잠자기 바빴다. 몇몇 고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도 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동창은 결혼 한다는 연락도 왔다.

“나는 결혼은 포기해야 되겠지?”

구건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결혼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딱히 사귀는 여친도 없지만 지금 생활로는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영세 공장에서 노동만 하다 끝나는 인생인가…. 휴.”

구건호는 원룸에 돌아오면 날마다 혼술만 즐겼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겉늙어 자신이 싫어졌다. 갑자기 고모가 말한 강남의 철학관이 생각났다.


구건호는 지금의 공돌이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우니까 정말 고모가 말한 철학관을 가고 싶었다.

“사주팔자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생활이 너무 비참하니 거기라도 가보자.”

구건호는 원룸에서 혼자 또 술을 마셨다. 술이 없으면 지금의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공장은 오전 8시부터 작업 후 10시가 되면 15분간 휴식 타임이 있었다. 구건호는 고모가 말한 강남 철학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철학관 원장이 아닌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은 지금 상담중이십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 오늘 몇 시까지 상담을 하시는가요?”

“오늘은 손님들 예약이 꽉 차 있습니다.:

“내일은 어떤가요?”

“내일도 예약을 받을 수 없겠네요.”

“토, 일요일도 가능합니까?”

“일요일은 선생님이 산 기도를 가시기 때문에 안 되고 토요일은 가능합니다.”

“그럼 토요일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토요일 오전11시에 오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는 강남의 이 역술인이 정말 유명한 사람으로 여겼다. 며칠씩 예약이 밀려 있다니 얼마니 용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 의심도 들었다.

“손님도 없으면서 쇼로 그러는 것 아니야?”


구건호가 근무하는 공장은 주 5일 근무한다. 토요일 가끔 특근이 있지만 사주 보러 가는 날은

마침 특근이 없었다. 구건호는 여유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하철에서 앉아 가는데 마침 노인 한명이 타서 스마트폰 보는 척을 하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건호냐? 나, 고등학교 동창 원철이다.”

“어, 조원철. 오랜만이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약국집 아들 조원철이 뜻밖에 전화를 했다.

“전화 통화 가능하냐?”

“그래, 괜찮아. 그런데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

“응, 여의도 식당에서 박종석을 우연히 만나서 알았어. 너 지금 무슨 회사에 나간다며?”

“뭐… 조그만 중소기업이야. 넌 지금 H그룹에 다닌다고 했지? 승진은 좀 했냐?”

“응, 이제 겨우 대리야.”

“대기업이니 연봉도 많겠지. 대리급이면 연봉이 얼마나 되냐?”

“우리 그룹은 좀 짜. 7,000 정도 받아.”

구건호는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연봉 2,000만원이 겨우 넘는 자기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많이 받네. 우린 중소기업이라 별로냐.”

“중소기업도 의외로 많이 주는데도 많다던데? 너도 들어 간지 몇 년 되었으니 많이 받지?”

“우린 작아.”

“얼만데? 6,000?”

구건호는 속으로 ‘6,000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얘기하면 속상해. 그건 그렇고 너희 엄마는 부천에서 아직 약국 하시지?”

“아니, 서울 목동으로 옮겼어, 우리 누나 병원이 목동에 있어. 병원하고 같은 건물 내에서 약국하고 계셔.”

“그래? 병원을 끼고 약국하니 잘 벌겠다. 얼마나 번다고 하시냐?”

“난, 잘 몰라. 매월 떨어지는 것이 한 2,000 될라나 모르겠다.

구건호는 또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월수입 2,000이면 자기 연봉인 셈이었다.


“실은 오늘 내가 전화한 것은 결혼 때문이야. 내가 다음달 5일 결혼을 해. 청첩장 보내려고 하는데 너희 집 주소를 몰라 이렇게 전화한다.”

“그래? 축하한다. 주소는 뭐… 청첩장 그냥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라.”

“그럴까?”

“신부는 뭐하는데?”

“약사야. 우리 엄마가 약사라 약사는 싫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흰 피부에 귀족풍으로 생긴 조원철의 얼굴 모습과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이 떠 올랐다.

“알았다. 결혼식에 꼭 가마. 나 지금 어디 좀 가고 있어?”

“어디, 좋은데 가나보지?”

“아니야. 철학관에 가. 강남 유면 철학관을 누가 소개해 주어서.”

“하하, 궁합보러 가는 모양이구나. 어디 있는 철학관인데?”

“강남역 근방에 있는 진여 철학관이라고 해. 용하다고 해서.”

“진여 철학관? 거기 우리 엄마 잘 가는 곳인데. 진여 철학관 원장님 박도사 라고 하면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아무튼 잘 갔다 와라.”

“그래, 고맙다. 결혼식 날 보자. 안녕.”

전화를 끊고 나니 이번엔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왜 전화했어? 요양원 아니야?”

“집이다. 요양원 일은 끝나서 일찍 왔어. 노인들 똥오줌 받아내는 것도 이젠 지겹다.”

“왜 전화했냐고!”

“내 정신 좀 봐. 다른 게 아니고 너희 아버지 일이야.”

“아버지가 왜?”

“너희 아버지가 허리 아픈 것 다 나으셔서 경비 자리라도 한번 알아보려고 해.”

“알아보면 알아봤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 책상 서랍에 넣어둔 너희 아버지 신임 경비원 교육 이수증 못 봤니? 그게 있어야 한데.”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왜 이렇게 소린 지르냐.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전화 끊는다.”

“에이, 씨.”

지하철에서 동창생 조원철 전화와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니 열차가 어느새 강남역에 닿았다.


강남역은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걷기조차 힘들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역시 다른 나라야. 대한민국은 강남 공화국이 있고 지방 공화국이 따로 있어. 하이고 예쁜 여자들도 많네.”

근처 커피숍과 상점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세련되고 예뻤다. 지방에서 공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구건호 따위는 근처에도 못 가볼 것 같았다. 구건호는 길을 잘못 들어 삼성전자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좋다.”

건물 안에서 목에 사원증을 건 젊은이들이 도도한 걸음걸이로 구건호의 앞을 지나갔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저들과 같은 신분이 될까?”

구건호는 그들이 부러웠다. 가지고 온 메모지를 보았다.

“진여 철학관이 이 근처 어디 오피스텔 8층이라고 했는데…. 오피스텔 이름이…. 뭐? 도시의 빛? 여기서 뱅뱅 사거리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뱅뱅 사거리는 또 어디야?”

구건호는 한참 걷다가 오피스텔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8층 진여 철학관은 문에 아주 작은 팻말만 걸어 놓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였다.

“제대로 찾아 온 것 같군.”

구건호는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피스텔은 보통 작은 방 만한데 여기 오피스텔은 무척 넓었다. 40평은 됨직 하였다. 고급 의상을 입은 중년의 아줌마 몇 명이 앉아있고 안내하는 여직원의 책상이 보였다. 여직원은 안경을 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구건호는 사무실 형태의 철학관은 처음 가보았다. 그동안 재미로 사주카페나 학원가 근처의 타로 점을 치는 곳은 방문해 보았었다. 그런 곳은 가격도 비싸지 않아 5,000원 아니면 1만원 정도였다.

“이곳의 상담료는 얼마나 받을까?”

구건호는 럭셔리한 사무실 인테리어와 상담을 받기위해 대기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돈 많은 아줌마들 같아 다소 쫄았다. 여직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11시에 예약하신 손님이죠? 앞 손님들이 밀려서 12시경에나 상담이 가능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우선 녹차 한잔 드릴까요?”

“아, 아니 괜찮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구건호는 엉거주춤하다가 소파의 가장자리에 앉았다. 아줌마 손님들이 일제히 구건호를 쳐다보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줌마들이 젊은 놈이 뭐 때문에 왔을까 하는 것만 같았다.”

‘험, 험.“

구건호는 얕은 기침을 하고 사무실을 벽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벽에 상담료 10만원이라고 써 있었다. 가만히 포켓을 만져 보았다. 상담료가 3만 원 정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10만원이라니 더럽게 비쌌다. 상담이 끝난 사람이 나왔다. 나이는 50대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무척 세련된 사람이었다. 상담이 끝난 50대가 여직원한테 10만원의 복채를 주고 인사를 하고 나갔다. 소파에 앉아있던 대기자중 한사람인 60대 아줌마가 중얼거렸다.

“방금 나간 사람은 아주 세련 되 보이네. 옷하고 빽도 모두 명품만 걸쳤네.”

여직원이 아줌마의 말을 받았다.

“방금 나간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00장관 부인이에요.”

“오라, 그랬구먼. 어쩐지 복스럽고 세련되어 보이더라니.”

“00장관 부인이 다녀갔다는 말 아무한테 말하지 마세요.”

“내가 어디 가서 무슨 말을 하나. 그런데 젊은 색시, 여기 토요일도 이렇게 사람 많이 와요? 토요일은 오전만 본다는데.”

“네, 토요일에도 15명 정도는 와요. 평일에는 30명 정도 오는데요. 뭘.”

구건호는 가만히 머리 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상담료가 10만원이면 평일에 30명… 300만원이네!”

구건호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하루에 나의 한 달 급여보다 많다니!”

부천에 살 때 이웃에 사는 재식이 삼촌이 철학관을 열었다가 임대료도 못내 접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여기는 차원이 달랐다. 재식이 삼촌은 역술계도 뜨는 사람 몇 명 외에는 대부분 90%는 임대료도 못 내고 한 달 수입이 80만원도 못된다고 하였었다.

“진여 철학관이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구건호가 마지막 손님인 모양이었다. 구건호 뒤로는 손님이 오지 않았다. 가끔 전화가 걸려 왔는데 예약 전화였다. 지루하게 1시간 정도 기다리자 구건호 차례가 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제 들어가세요.”

안경 낀 여직원이 웃으면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건호가 상담실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60대 정도의 남자가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겠군. 이리와 앉아요.”

구건호가 커다란 책상 앞 손님용 의자에 앉았다. 역술인이라 도사 복장이 아니더라도 개량 한복쯤은 입었는지 알았는데 넥타이를 맨 신사 차림이었다. 가만히 보니 역술인 보다는 대학 교수처럼 생긴 사람이었다.

“내가 진여 철학관 원장 박판수요. 사람들이 그냥 박도사라고 부르지.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지요?”

구건호가 생년월일을 불러 주었다.

“음력이요? 태어난 시각은?”

“어머님이 아침 먹고 저를 낳으셨답니다. 9시경쯤 된다고 들었습니다.”

“진시(辰時)인 모양이군. 지금 화공약품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겠군!”

구건호가 눈을 크게 떴다. 플라스틱 공장에서 드럼통 닦으며 화공약품을 날마다 사용하고 있으니 놀랄 만 하였다.

“술 좀 그만 먹어!”

대뜸 반말이었다. 날마다 사는 것이 괴로워 퇴근 후 원룸에 돌아가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는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뭔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개졌다. 박도사는 종이에 뭔가를 한참 적었다. 흘려 쓰는 한자라 무슨 글자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말없이 무언가를 5분간 끄적였다.

“흠….”

박도사가 자기가 쓴 종이를 바라보고 신음 소리를 냈다.

“뭐, 잘못된 점괘가 나왔습니까?”

박도사는 구건호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종이만 쳐다보았다. 구건호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공돌이가 팔자가 좋아질 이유도 없겠고 앞길만 막막하여 도사가 신음 소리를 내는 거겠지 하였다. 이때 상담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여직원이 목을 내밀었다.

“선생님, 이회장님 오셨는데 기다리시라고 할까요?”

“이회장이? 들어오시라고 해!”


양복을 입은 60대 남성이 들어오다 말고 멈칫 하였다.

“상담 받으러 온 손님이 계신 것 같은데 내가 들어오면 되겠나.”

“아니, 이리와 내 옆으로 앉아 보시게!”

이회장이란 사람이 앉지는 않고 박도사 책상 옆에 섰다.

“이걸 보시게. 방금 이 앞에 앉아있는 젊은이의 사주를 본거네.”

“손님 건데 내가 봐도 되나?”

이회장이란 사람이 구건호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하였다.

“이거 보게. 엄청난 신왕재왕(身旺財旺)한 사주네.”

“음…. 정말 그렇군.”

이회장이란 사람이 박도사가 건네준 종이를 안경 너머로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신왕재왕?”

구건호는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했다.

“더구나 양일간(陽日干)의 사주네.”

“대운도 곧 들어오고 있군.”

박도사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구건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굴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이는 아주 큰 부자가 될 사주네. 만석꾼이가 되어 천금을 희롱할 사주이네.”

“제가요? 전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알아. 지금 운세로는 공장 다니는 것도 과분해.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

박도사가 목을 길게 빼어 구건호의 눈을 맞추며 생글거렸다. 뭔가를 놀리는 행동이었다.

“지방대 다니다가 사이버 대학은 졸업했습니다.”

“그것도 과해. 운 나쁘면 학교도 못 다녀.”

“그럼 앞으로 좋아진다는 말씀입니까?”

“걱정 마! 스카이대학 나온 놈들 밑에다 두고 회장소리 들을 테니까!”

구건호는 박도사가 복채 10만원을 받기위해 허황된 소리를 늘어놓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빳다.이때 박도사 옆에 있던 이회장이란 사람이 구건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가만, 젊은이는 어디서 본 것 같군.”

“예?”

구건호도 이회장이란 사람을 다시 쳐다보았다. 구건호도 분명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포천 낚시터에서 보았던 젊은이군.”

구건호도 생각났다. 낚시터에서 본 그 60대였다. 제네시스 리무진을 타고 왔던 사람이었다.

“어? 두 사람 구면이야? 포천 낚시터에서 보았다고? 포천 낚시터면 이회장 별장 있는데 아니야? 허허 인연이 따로 없구먼.”

박도사는 껄껄 웃으며 녹차를 한잔 마셨다. 녹차를 마시고 박도사는 또 목을 길게 빼고 말했다.

“젊은이, 여기 옆에 있는 이회장이 누구신지 아는가? 청담동에서 빌딩을 몇채 가지고 있는 구두쇠지. 그래 보왔자. 이회장은 천석꾼이 밖에 못되고 젊은이는 만석꾼이네. 오래간만에 대운 제대로 받는 신왕재왕 사주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네. 젊은이 이름을 내가 오랫동안 기억해 두지. 구건호라고 했나? 세울 건(建)자, 클 호(浩)자 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래, 지금 생활이 고달프더라도 염려 마시게. 앞으로 5년 정도 지나면 큰 부자가 될 걸세. 젊은 사람이니 복채는 5만원만 받겠네.”

“고맙습니다.”

구건호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이회장이란 사람한테도 정중하게 인사를 하였다. 구건호는 철학관을 나와 강남역으로 왔다. 박도사의 이야기가 실없는 소리라고 해도 일단은 부자가 된다니 기분이 좋았다. 강남역 근처의 큰 빌딩,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이 이제는 웃으며 구건호에게 축복의 박수를 쳐주는 것만 같았다.


구건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울 강남의 유명 철학관은 꿈속에서 갔다 온 듯싶었다.

“철학관 박도사도 실은 고급 사기꾼일 거야. 사람의 운명을 어찌 인간이 알겠는가.”

후배 박종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형! 토요일 날 어디 갔었어?”

“응, 강남의 용하다는 철학관이 있어서 거길 갔더랬어.”

“철학관? 그거 다 미신이야.”

“글쎄 나도 그렇게 보긴 한다만….”

“철학관에서 뭐라고 지껄이는데.”

“내가 아주 큰 부자가 된단다. 옛날로 치면 만석꾼이 사주래.”

“푸하하. 우리 같은 공돌이가 언제 부자가 되? 월급 200만원도 못타는데. 이 악물고 100만원 모으더라도 10년 가야 1억 2천이야. 결혼하면 아이 생기는데 돈 모을 수 있겠어?”

“끙….”

“결혼도 안 하고 형 환갑 때까지 30년 모으면 3억 6천이야. 지금 강남의 아파트 값이 얼마인줄 알아? 30평짜리도 웬만하면 15억이야. 부자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다니지 말어. 다 사기꾼들이야. 어느 책에서 보니까 사람의 운명을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했어.”

“약국 한다는 원철이 엄마도 자주 간다는 유명한 집이라고 해서….”

“아 참, 내가 원철이 형 결혼한다는 것 때문에 전화 하려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 버렸네.”

“원철이 전화 받았어.”

“그랬어? 결혼식 날 시청 앞에서 12시 30분에 만나 같이 들어가자.”

“그러지 뭐.”

“형도 이제 장가가야지.”

“난, 포기했다. 우리들은 3포, 5포들 아니냐?”

“자학은 여전하네. 나 오늘 면접 보러 가기 때문에 전화 끊는다.”

“어디 시험 보는데?”

“몰라. 무슨 테크라고 하는데 마찌꼬바 공장이겠지 뭐.”

“그래, 잘 해봐라.”

종석이의 전화를 끊고 벽에 걸린 카렌다를 보았다. 원철이의 결혼식 날이 하필이면 월급 전이었다.

“젠장, 은행 이자도 내야 하는데 결혼식이니…. 축의금은 얼마를 내지? 보통 5만원이면 되는데 그렇게는 안 되겠지? 있는 집 자식이고 대기업에 다닌다니 10만원은 보내야 할 텐데. 이거 큰일이군. 돈 때문에”

공장 취업한지가 얼마 안 되어 월급 날짜가 아직 멀었다. 구건호는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을 했다.

“고작 10만원 때문에 인간 구건호가 이렇게 괴로워하다니! 에잇! 젓 같은 세상!”

구건호는 방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나 저러나 원철이 결혼식 날 뭘 입고 가지?”

구건호는 무의식적으로 냉장고에 가 소주를 꺼내왔다. 식탁 위에 있는 김 봉지를 뜯어 안주 삼아 마시기 시작했다.

“남들은 결혼도 하는데 난 희망이 없으니. 에효.”

구건호는 소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입에 직방으로 털어 넣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상무가 불렀다.

“구건호씨, 어때, 일 할만 해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드럼통 세척은 이제 안 해도 됩니다. 전에 일하던 아줌마가 다시 온다니 이제 분쇄반으로 옮기세요. 아줌마가 좀 이따 10시 넘어 나온다니 인계할 것 있으면 하세요.”

“잘 알겠습니다.”

분쇄반이 분쇄 기계를 다루지만 세척반이나 분쇄반이나 다 그게 그거다. 기계 소리 때문에 소음이 심하지만 힘은 좀 덜 든다. 약간 기분이 괜찮은 것은 깐족거리는 김 반장 낯짝을 안보니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척반에 새로 온다는 아줌마가 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다소 여유가 생겨 다시 나온다고 했다. 쟁반 같이 큰 얼굴의 아줌마가 대추씨 같은 눈에 웃음을 가득 띠고 공장엘 왔다. 김 반장은 구면인지 호들갑을 떨며 아줌마를 맞이했다.

“아이고, 더 젊어지셨네.”

“김 반장님이 더 젊어지셨네요. 이 총각은 누구에요? 알바생?”

“아니 새로 채용한 직원이요. 오늘부터 아줌마한테 업무 인계하고 분쇄반으로 갑니다.”

“그래요? 호호호. 잘 생긴 총각이네.”

구건호는 아줌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인물은 없지만 아주 튼튼하게 생겼고 팔뚝도 구건호보다 더 굵어 보였다.

“A화학 드럼통은 저쪽 지게차 옆에 야적을 하시고요. B화학 제품은 컨테이너 뒤쪽에 쌓으시면 됩니다. 뚜껑은 각 표시가 되어 있고 B화학 제품은 주둥이 세척을 잘 해야 합니다. 불순물이 남아 있는 상태로 납품하면 클레임이 걸려 오니까요.”

“호호호, 설명 안 해도 알고 있어요. 여기 몇 개 남은 통이 있는데 저쪽으로 옮기지요. 지게차 왔다 갔다 하는데 방해가 되니.”

아줌마가 팔을 걷어 부치더니 드럼통 두 개를 끌고 야적장으로 갔다. 구건호는 한 개씩 했는데 아줌마는 두 개씩 들고 가 야적장 5단 높이까지 휙휙 던져 놓는다.

“무슨 아줌마가 저렇게 기운이 좋아!”

구건호는 아줌마의 솜씨를 보고 감탄을 하였다.

“나는 공돌이도 제대로 못할 놈 같군.”


구건호는 대충 인계하고 분쇄반으로 같다. 분쇄반 반장은 키가 크고 마른 50대였다.

“분쇄반으로 새로 온 구건호입니다.”

처음 온 사람이라 손이라도 내밀고 악수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반장은 그렇지 않았다.

“아, 그쪽에 서 있지 말아요. 전선줄 건드리면 어떻게 해요?”

가만히 보니 콘센트 하나에 여러 전기 플러그가 꽂혀 있는 것을 구건호가 건드린 모양이었다.

“이크!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이쪽으로 나와요. 지게차 들어오지 않아요!”

지게차가 엄청나게 많은 폐 프라스틱 통을 실고 왔다.

분쇄반은 외국인도 있었는데 구건호를 보고 싱긋 웃었다. 외국인은 어느 나라 계통인지 시커멓고 징그럽게 생겼다. 외국인은 작업을 할 때 귀막이와 마스크를 쓰고 일했다.

“귀마개 가져 왔어요?”

반장이 구건호에게 물었다.

“귀마개 준비하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안 가져 왔어요?”

반장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품이나 다름없는 망가진 철제 책상위에 있는 귀마개를 구건호에게 던져 주었다.

‘내꺼 쓰시오.“

귀마개를 보니 너무 더러워 쓰기가 난처했다. 구건호가 주저주저 하자 반장이 딱하다는 듯이 구건호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저기 있는 폐드럼통이나 저 외국인에게 날라다 줘요.”

“알겠습니다.”

반장이 전기 박스 안에 있는 스위치를 넣자 엄청난 소음이 들렸다. 외국인이 흰 액체의 화공 약품을 작은 통에 붙는데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냄새가 나서 맡기 어려웠다.


퇴근 후 원룸에 돌아가니 옷에서 계속 화공약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분쇄용 플라스틱 통을 많이 날라서인지 오늘따라 허리와 왼쪽 손목이 몹시 아팠다. 책장 서랍을 뒤져 파스를 꺼냈다.

“이거 오래된 파스라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구건호는 파스를 왼쪽 손목과 허리에 붙였다. 저녁도 하기가 귀찮아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쿵쿵한 발 고린내 나는 침대에 들어 누었다. 누워서 스마트 폰을 만지다가 후배 박종석이 면

접 보러간 것이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